루이즈 부르주아. 이름은 낯설 수 있지만, 전시장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청동 거미를 보면 단번에 기억에 남는다. 20세기 현대미술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그녀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이 25년 만에 다시 열린다.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의 제목은 ‘루이즈 부르주아: 덧없고 영원한’. 작품 수만 100점을 넘고, 회화·조각·설치 등 다양한 매체가 총망라됐다.
부르주아는 단순히 조각을 하는 예술가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예술로 치환했고, 감정 그 자체를 조형물로 만들었다. 작품을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은 그녀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는 것. 아버지의 외도, 어머니의 병, 집안 분위기 속에서 생긴 트라우마가 평생의 작업에 밑바탕이 됐다. 대표작 ‘거미’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부르주아는 어릴 적 태피스트리를 수선하던 엄마를 거미와 닮았다고 생각했고, 보호와 억압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모성을 그 이미지에 담았다.
이번 전시는 공간 구성도 특별하다. 1층은 의식, 2층은 무의식을 상징한다. 밝은 전시실을 지나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가며, 그녀가 감정을 쌓고 해체하고 다시 꿰매는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좋은 엄마’ 시리즈는 육아에 얽힌 상반된 감정을 드러낸다. 모유 수유는 숭고하지만, 끊임없이 자신을 내어줘야 하는 엄마의 현실이 고스란히 조각에 담겨 있다. ‘나는 되돌린다’라는 작품에서는 젖을 원하는 아이를 뿌리치고 외면하는 모습으로 ‘나쁜 엄마’를 표현하기도 한다.
성과 권력, 사랑과 분노, 돌봄과 거부 같은 감정의 이중성은 다른 조각들에서도 반복된다. 성기를 결합한 ‘개화하는 야누스’, 해체된 신체를 재조합한 ‘아버지의 파괴’ 등은 그저 충격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기억의 파편을 끌어내기 위한 장치다. 특히 마지막에 전시된 ‘커플’은 마치 부르주아가 평생 싸워온 감정과 결국 화해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두 개의 나선형 인물이 공중에서 하나로 융합되며 회전하는 장면은, 충돌과 갈등이 마침내 통합으로 나아가는 걸 보여준다.
이 전시는 단지 거장의 회고전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이란 소재가 어떻게 예술 언어로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작품 사이사이에 배치된 그녀의 일기, 작업 노트, 정신분석 기록들은 예술가가 아닌 인간 부르주아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녀는 33년간 정신분석을 받았고, 감정이라는 소재를 붙잡고 70년을 작업했다.
예술가의 이름보다도, 그가 말하고자 한 감정이 더 먼저 다가오는 전시다. ‘거미’는 이제 단순한 조각이 아니다. 어떤 사람에겐 ‘나를 길렀지만 나를 떠난 존재’, 어떤 사람에겐 ‘잊지 못하는 상처’, 어떤 사람에겐 ‘기억해야 할 감정’일 수도 있다. 전시는 2026년 1월 4일까지. 입장료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