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영어학원도 입시가 있다면서요?”
실제다. 일부 인기 유아영어학원에서는 4세와 7세 아동에게 ‘입학시험’을 치르게 했다. 아이들은 알파벳 쓰기를 연습하고, 학부모는 수백만 원을 감수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문제는, 이런 풍경이 이제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됐다는 점이다.
학원업계가 스스로 칼을 들었다. 전국 학원총연합회 산하 외국어교육협의회는 최근 “4세·7세 입학시험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학부모 눈치 보기식 방관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유아 사교육 과열을 막기 위한 자율 정화 조치를 꺼내든 것이다.
이제부터는 시험 대신 선착순이나 추첨으로 원생을 받도록 권고하고, ‘영어유치원’이라는 표현도 사용하지 않도록 지침을 내릴 예정이다. ‘유치원’이란 단어가 공교육 시설을 의미하는 만큼, 일부 학원이 학부모를 혼동시키는 데 악용해왔다는 비판도 있었다.
사실 이 같은 변화는 완전히 자발적이라기보다, 어느 정도는 ‘등 떠밀린’ 조치다. 지난달 국회에선 이른바 ‘영유아 사교육 금지법’이 발의됐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36개월 미만 아이에게는 어떤 사교육도 금지되고, 36개월 이상도 하루 40분 이상 수업을 시킬 수 없게 된다. 위반하면 교육감이 해당 학원의 교습을 막거나 등록을 말소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유아영어학원 입장에선 “이대로 가다간 진짜 다 막히겠다”는 위기의식이 자정 선언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렇다고 학원 측의 입장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 연합회 관계자는 “무조건 금지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아이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맞벌이 가정, 경제적 여유로 자녀 교육을 일찍 시작하고 싶은 가정 등 현실이 다양한데, 공공 대안 없이 일괄 규제만 강해지면 오히려 음성 사교육이 커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오히려 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말한다. 광고 과장, 과도한 교습비 요구, 자격 미달 강사 채용 같은 문제부터 제대로 바로잡고, 동시에 공영 유아 영어센터나 돌봄형 영어 교육 기관 등 공공 인프라를 확대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는 얘기다.
결국 이번 ‘입학시험 금지’ 선언은 단순한 규제 회피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유아 사교육에 대한 사회적 경고음이 커진 지금, 어떤 식으로든 변화는 불가피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시험을 잘 보는 능력이 아니라, 편안하고 균형 잡힌 첫 배움의 경험이다.
지금 필요한 건 ‘누가 먼저 영어 단어를 외우나’의 경쟁이 아니라, ‘누가 먼저 상식으로 돌아서나’의 전환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