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7080세대의 중고거래 유형이 다양해지고 있다. 단순히 중고거래나 취미와 관심사 공유 외에도 요양원 입소를 앞두고 집안을 정리하는 경우도 많아진 것. 지난 해 남편을 먼저 보내고, 파킨슨병 투병으로 몸이 불편해지면서 자식에게 짐이 될까 요양원 입소를 결정한 최모(81세)씨는 최근 중고 거래 앱 ‘당근마켓’에 아끼던 의자와 쓰지 않는 전자제품을 올렸다.
기존 중고거래와 달리 단순히 ‘물건을 팔기 위해서’가 아닌, 내 주변을 정리하기 위한 거래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죽음 이후 남은 물건을 뜻하는 ‘유품(遺品)’이 이제는 ‘생전 정리’로 변하고 있다. 요양원 입소가 보편화되면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아졌고, 노인 스스로가 이를 받아들이고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인이 도와주는 ‘중고 앱 입문기’
스마트폰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은 데이케어센터 선생님들이나 요양보호사와 함께 중고 거래를 배우기도 한다. 서울 종로구에 사는 이모(73)씨는 자신이 팔고 싶은 물건을 스마트폰으로 찍어두면 선생님들이 앱 사용법을 도와준다. 선생님을 따라 직접 물건을 올려보고 채팅도 하다보면 자신감도 생긴다. “안쓰던 물건을 다른 사람이 사주는 것도 신기하고, 친구들이 보면 부러워하니 재미가 있어요. 어차피 싸가지고 가져가지 못할 것 빨리 정리할 수 있으면 좋죠.”
“팔 수는 있어도, 못 버리는 건 있어요”
물건을 대신 정리해주는 자녀들도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직장인 최모(53)씨는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의 집을 정리 중이다. “쓸 만한 가전은 중고로 팔고, 너무 낡은 건 버려요. 그런데 엄마가 쓰던 빗, 작은 거울 같은 건 손이 안 가요.” 그는 중고 거래 앱에 익숙하지만, 정리라는 말 대신 ‘정리 중 멈춤’이 더 어울린다고 했다. “그 물건에 엄마가 있어요. 그러니까 못 버리겠어요.”
일본에선 50대부터 ‘생전 정리’
이런 변화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초고령 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에서는 ‘정리생(整理生)’이라는 말이 생겼다.
죽음을 준비하며 물건을 정리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신조어다. 유품 정리 서비스 업체를 운영하는 김석중 씨는 “일본에서는 50대부터 유품 정리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한국도 이제 그 시기에 들어선 것 같다”고 했다. 노인의 정리는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아니라, 가족을 배려하는 마지막 선택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중고 앱 속 작은 배려들
요즘 중고 거래 앱을 보면, 특별한 매물들이 눈에 띈다. ‘할머니 손때 묻은 접시 세트’, ‘고장 났지만 정감 가는 라디오’, ‘예전 피아노 학원 책상’ 같은 것들이다. 판매 금액은 대부분 몇 천 원에서 몇 만 원. 그리 크진 않지만, 이 작은 거래 안에는 평생의 기억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사람들은 종종 ‘죽음을 준비하는 문화’를 무겁게만 본다. 하지만 지금 7080 부모들이 보여주는 건,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건 내가 다 하고 가겠다”는 담담한 배려다. 그리고 그 배려는, 중고 거래라는 작고 낯선 방식으로 우리 곁에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