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닮아서 살찐 거야.” 농담처럼 들릴 수 있는 이 말에 과학적 근거가 있다.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부모의 체중, 특히 어머니의 비만은 자녀의 비만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비만학회가 5일 공개한 ‘2025 비만 팩트시트’에 따르면, 부모가 고도비만일 경우 자녀의 비만 확률이 최대 5.9배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체질량지수(BMI)가 자녀의 비만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보고서는 건강보험공단과 국민건강영양조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됐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아버지가 고도비만(2단계 이상)일 경우 아들의 비만 확률은 5.6배 증가했고, 어머니가 고도비만일 경우 딸의 비만 확률은 5.7배로 더 높았다.
부모 모두가 비만일 경우 자녀의 비만 위험은 최대 5.9배로 뛰었다. 이처럼 부모의 체중은 단순한 생활 습관 차원을 넘어서 자녀의 건강에 깊은 영향을 준다.
자녀의 형제 수에 따른 비만 확률도 차이를 보였다. **외동 자녀의 비만 유병률은 14%**로, 형제가 있는 경우 (13%)보다 소폭 높았다. 또한 첫째 자녀의 비만율(15.1%)은 둘째 이상(11%)보다 뚜렷하게 높았다. 이는 가정 내 양육 환경이나 주의 집중도, 식습관 통제력 등이 영향을 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전체 성인 비만율은 최근 3년간 38.4%로, 성인 3명 중 1명 이상이 비만이다. 소아청소년 비만율도 13.8%에 달한다. 특히 남아는 14세에 비만율이 28.3%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여아는 17세에 26.7%로 가장 높았다. 성장기 아동과 청소년의 체중 관리가 시급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엄마 유전자의 ‘은근한 영향력’…유전+양육, 둘 다 작용
이번 발표와 더불어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연구팀도 눈길을 끄는 결과를 발표했다. 과학 저널 플로스 유전학(PLOS Genetics)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어머니의 유전자는 자녀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았더라도 ‘양육 환경’을 통해 자녀의 체중에 큰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이를 ‘유전적 양육(Genetic Nurture)’이라고 부르며, 단순 유전자 전달을 넘어서 엄마의 식습관, 행동, 생활환경 자체가 아이의 체중 형성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라이트 박사는 “이 연구는 엄마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자녀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려는 것”이라며 “임신 중이나 양육 과정에서 엄마의 BMI를 낮추는 맞춤형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비만학회는 “비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간 건강 불평등 문제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 비만은 유전적 요인뿐 아니라 가족의 식습관, 운동 습관, 생활환경 전체가 함께 작용하는 ‘사회적 질병’이 된 셈이다.
특히 어릴 때 형성된 식습관은 성인이 된 후에도 고스란히 남는다. 엄마가 밥 먹을 때마다 TV를 켜면 아이도 같은 습관을 갖는다. 엄마가 군것질을 자주 하면 아이도 간식을 찾기 쉬운 환경에서 자란다. 유전보다 습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전문가의 제언: “아이 건강은 부모가 만든다”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생활 관리법을 제안한다.
- 임신 전후, 부모의 체중과 식습관을 적극 관리
-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가공식품·패스트푸드 줄이기
- 부모가 먼저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 TV 시청, 스마트폰 사용 시간 제한
- 자녀 BMI(체질량지수) 정기적 확인
- ‘아이 살은 키로 간다’는 말, 믿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