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의 명문 구단 토트넘 홋스퍼가 중대한 변화를 맞았다. 25년간 구단을 이끌었던 다니엘 레비 회장이 전격 사임을 발표하면서, 구단 역사에 하나의 마침표가 찍혔다. 5일(한국시간), 토트넘은 공식 채널을 통해 “다니엘 레비 회장이 오늘 즉시 회장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손흥민이 팀을 떠난 지 약 한 달 만이다. 한국 축구 팬들에게는 두 번의 충격이 연달아 찾아온 셈이다.
레비 회장은 구단을 통해 “이 여정은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구단과 함께 만들어낸 발전은 자랑스럽다”며 “언제나 토트넘을 응원하겠다”는 말을 남겼다.레비는 2001년, 당시 중위권에 머물던 토트넘의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무려 25년간 자리를 지키며 EPL 최장수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안았다.
그의 재임 기간, 토트넘은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특히 2019년 완공된 최첨단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은 레비의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꼽힌다. 10억 파운드(한화 약 1조 7천억 원)가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토트넘을 단순한 축구팀을 넘어 ‘글로벌 스포츠·이벤트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경영은 성공, 성적은 실패? 손흥민에게 박했다는 평가
하지만 레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수익은 냈지만 우승은 못했다”는 팬들의 비판은 그를 끝까지 따라다녔다. 실제로 2008년 리그컵 우승 이후, 토트넘은 레비 체제에서 단 한 번도 프리미어리그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2019년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이 그나마 가장 인상적인 성과였지만, 그마저도 리버풀에 패했다.
더욱이 2022~23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는 단 한 명의 선수도 영입하지 않고 시즌을 시작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팬들은 “레비는 토트넘을 진짜 축구 구단이 아니라 상업 기업처럼 운영했다”며 냉소를 보냈다.한국 팬들에게 레비의 이미지는 더욱 복잡하다.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지난 10년간, 레비는 그를 잘 활용하면서도 정작 팀의 경쟁력 강화에는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2020년대 중반 이후 손흥민의 부담이 과도하게 커졌음에도 뚜렷한 보강 없이 시즌을 운영했던 것, 그리고 지속적인 감독 교체와 전술 불안정성 속에서도 구단의 입장을 고수한 점은 손흥민 팬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결국 손흥민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LAFC로 이적했다. 그리고 약 한 달 후, 레비 회장이 뒤따라 구단을 떠났다.지난 시즌 토트넘은 리그를 17위로 마감했다. 이런 부진은 결국 팬들의 분노로 이어졌고, 홈경기장에는 “레비 아웃”을 외치는 피켓과 구호가 끊이지 않았다.
레비는 끝내 이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물러나는 선택을 했다. 그의 후임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며, 당분간은 ENIC그룹의 피터 체링턴 이사가 비상 의장직을 맡아 구단을 운영할 예정이다.레비 회장의 사임은 단순한 경영진 교체를 넘어, 토트넘이라는 구단의 방향성 자체가 전환점을 맞았음을 의미한다.
그는 구단을 자립 가능한 비즈니스로 키웠지만, 동시에 “축구적인 성공”은 놓쳤다. 팬들은 이제 명확한 비전과 우승을 향한 야망을 가진 리더를 원하고 있다. 손흥민이 떠나고, 레비가 떠나고. 토트넘은 지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이제는 ‘진짜 축구’를 보여줘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