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실험이 남긴 교훈, “소득은 늘었지만 일은 줄었다”

Biz
현금 지원, 안전망은 되지만 사다리는 아니다
기본소득 실험이 남긴 교훈, "소득은 늘었지만 일은 줄었다" 1

사진출처: 이미지투데이

최근 미국과 한국에서 실시된 기본소득 실험이 생활 안정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고용 개선이나 생산성 향상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현금성 복지가 갖는 구조적인 한계와 함께, 보다 정교한 복지 설계의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기본소득 받은 집단, 소득과 근로시간 모두 감소”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학자대회(World Congress of the Econometric Society)’에서는 오픈AI CEO 샘 올트먼이 후원한 기본소득 실험 결과가 공개돼 이목을 끌었다.

오픈리서치(OpenResearch)는 2020년부터 3년간 미국 일리노이와 텍사스의 저소득층 1000명을 대상으로 매달 1000달러(약 140만 원)를 무조건 지급했다. 대조군 2000명에게는 월 50달러만을 지원하며 양 집단의 변화를 추적했다.

실험 결과, 기본소득을 받은 집단은 연간 총소득이 대조군보다 약 2000달러 적었고, 노동시장 참여율도 3.9%포인트 하락했다. 주당 근로시간은 1~2시간 줄었으며, 배우자 역시 비슷한 감소 경향을 보였다.

여가 시간이 증가하긴 했지만, 이 시간이 교육이나 재취업 준비 같은 생산적인 활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연구진은 “노동 공급이 줄어든 건 분명했지만, 그 빈자리를 메운 행동은 없었다”며 “기본소득의 장단점이 동시에 드러난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시 ‘디딤돌 소득’도 비슷한 양상

같은 학술대회에서 서울대 이정민 교수팀은 서울시 ‘디딤돌 소득’ 시범사업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 사업은 기준 중위소득 85% 이하 가구(재산 3억2600만 원 이하)를 대상으로 부족한 소득을 보조하는 방식이다.

연구에 따르면, 총소득과 소비 지출은 증가했지만 노동소득 증가율은 낮았고 고용 개선 효과도 크지 않았다. 다만, 정신건강 지표는 전반적으로 개선돼, 현금 지원이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은 확인됐다.


“경제는 바뀌어도, 인식은 바뀌지 않는다”

현금성 복지가 체감 효과에 비해 인식 변화를 유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임란 라술 영국 UCL 교수팀은 파키스탄 펀자브 지역에서 농촌 1만5000가구에 약 86만 원 상당의 자산 또는 현금을 일회성으로 지급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수혜 가구의 경제 상황은 나아졌고, 지역 내 불평등도 완화됐다. 그러나 정치적 태도나 사회 인식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연구진은 “경제적 상황은 바꿀 수 있어도 사회적 인식은 그만큼 빠르게 바뀌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 “현금만으로는 부족…복지의 다층화 필요”

이번 실험들은 공통적으로 현금성 지원이 단기적 생활 안정과 소비 진작에는 효과적이지만, 노동 의욕 저하와 생산성 정체라는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기본소득은 분명 생활을 안정시키고 소비를 촉진시켰다”면서도, “장기적인 고용 확대로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단순한 현금 지원을 넘어, 교육, 직업 훈련, 보육·의료 서비스, 정신건강 지원 등을 포괄하는 다층적 복지 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경제 전문가는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수혜자의 인식과 사회적 요인까지 고려하는 종합적 접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